12월 31일과 1월 1일 사이의 경계는 아무런 때도 아니다.

누군가는 지구가 동일한 위치를 지나는 날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지구의 공전 주기는 정확히 365일이 아니다. 어쩌면 1년이 365일에 꽤나 가까운 것도 기적에 가까울 지 모른다. 공전 주기가 꼭 자전 주기의 정확한 배수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 까닭에서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연말이 되면 들뜨고,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인간에게는 무언가 이정표가 필요한 법이다. “해”가 그러하고, “달”이 그러하고, “일”이 그러하다. 세 가지가 모두 바뀌는 1월 1일 0시는 (혹은 12월 31일 24시는) 그래서 우리에게는 중요한 때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20대의 절반을 마무리하며, 또한 대학을 졸업하게 되는 내게는 더더욱 그렇다.

돌이켜 보면 20대는 온통 서투름뿐이었다. 그러니 이제는 조금이나마 능숙한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서도. 알량한 대학 졸업장 하나로 어른이라 감히 말하기에,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 이해하려는 시도조차도 주제넘는 짓일 정도로.

대학원 진학을 결심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대로 세상에 던져지기에 나는 너무 어설프다. 혹자는 도피라고 폄하할지도 모른다. 부정할 생각은 없다. 나는 이렇게 몇 년의 유예를 얻은 셈이니. 언젠가는 깨어질 알 껍데기의 수명을 연장하는 게 내게는 최선이었다. 연구가 재미있고, 연구실 사람들이 좋고, 교수가 하고 싶고, 이런 이유들은 당연히 내 결심에 영향을 주기는 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벌써부터 돈을 좇다간 어른이 되지 못할 것 같았다. 아직 내게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세상을 보는 눈을 기를 시간이, 그리고 한 명의 사람으로 제구실을 할 수 있기까지의 시간이.

지난 6년간 옆에 있어주었던 사람과의 결혼도, 아직은 그래서 엄두를 내지 못한다. 언젠가 내가 한 명의 사람 몫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면, 그때가 아마 네게 청혼하는 날이 되지 않을까. 내가 누군가와 새로운 가정을 온전히 꾸리기에 아직은 너무 이르다. 나는 어리고 부족하고, 내 자신조차 책임질 수 있다는 자신이 없으니. 완벽히 준비된 결혼은 없다지만 전혀 준비되지 않은 결혼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뭐, 그렇다. 두서도 없고 별 의미도 없는 글 끝까지 읽어 주신 당신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2021년 연말정산을 마친다. 내년에는 6년간 지겹도록 보았을 학부생 정누리 대신, 코딩하는 대학원생으로 다시 뵙도록 하겠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2021년의 마지막 밤, 스물다섯의 정누리 드림.